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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교류)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말씀 묵상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말씀 묵상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2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3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4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5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7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8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9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11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14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티베리아, 겐네사렛 또는 갈릴래아 호수라 불렸던 그곳! 그곳은 예수님의 제자들의 집이자 동네며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은 어릴적부터 그곳에서 살며 하는 것이라면 물질이요, 보는 것이라면 고기 잡는 것이 전부였을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그들은 위대한 스승을 만났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스승의 일갈에 그들은 무엇을 느꼈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가족과 그물, 배까지 버리고 단박에 그분을 따라나섰습니다.

 

3년을 스승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깨달음도 얻었겠죠. 기적을 목격하며 스승의 위대함을 보았고, 죽은 라자로를 보며 슬피 울던 스승의 연민어린 마음을 느꼈으며, 그분의 가르침을 들을 때마다 당장이라도 하느님 나라가 도래해 지금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것이라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하던 군중에 둘러쌓여 당당하게 스승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무섭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빵을 떼어 주고 포도주 잔을 나누어 마시며 자신을 기억하라는 스승의 말씀도 이상했고, 이제 곧 당신을 모른 채 하며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그분의 말씀도, 우리는 졸려 죽겠는데 겟세마니 동산에서 밤새 애절하게 기도하시던 모습도 이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튿날, 그토록 당당하고 위대했던 스승님이 순한 한 마리 어린양처럼 폭도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휘둘리고 매맞으며 십자가를 지는 모습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말 한 마디로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분이 왜?”

 

그렇게 ‘삼일천하’라는 말처럼 ‘삼년천하’였던 스승과 함께 했던 삼년의 시간이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스승을 믿지 않았던 시간으로, 자신들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 스승과 재회하게 됩니다. 분명 죽었던, 무덤에 묻혔던 분이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 눈앞에 살아 계심을 목격합니다. 하지만 그들도 처음엔 되살아나신 스승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물질이라면 누구보다도 베테랑급이었을 제자들도 밤새 고기잡이에 실패했을 그 무렵, 부활하신 스승님은 홀연히, 아주 자연스럽게, 평범한 어느날 아침처럼 나타나 그들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아직도 그분이 누구신지 눈치 채지 못한 채, 삶(스승을 따랐던 과거의 삶, 고기잡이에 실패한 현실의 삶)에서 오는 깊은 실망에 망연자실 하던 그들에게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왜 제자들이 이 낯선 이의 명령을 이행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들은 스승의 음성에 즉각 반응하도록 이미 훈련 되어 있었을 터라 이 명령을 따르게 됩니다. 이후 기적같은 일이 발생하죠. 전문가인 자기들도 잡지 못했던 고기를 어마어마하게 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눈이 뜨여 정말로 살아나신 스승님이 바로 그 음성의 주인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흘러가는 오늘 이야기는 사실 많은 상징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미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 이후 부활하신 그분을 두 번이나 만났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는 마치 그분을 처음 만난 것처럼 묘사하고 있죠. 또, 요한복음 전체에 나오는 ‘베드로’라는 이름의 횟수 중 사분의 일이 넘는 횟수가 오늘의 짧은 부활 이야기에서 거론되는 것도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다양한 묵상을 해 볼 수 있겠지만, 오늘 말씀인 요한복음 21장의 저자는 스승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바로 갈릴레아 호수라는 일상의 삶 속에 있으며, 그곳에서 부활하신 스승님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활체험의 장소는 바로 우리네 일상이며, 그분은 지극히 평범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고, 그분의 음성을 들었을 때 “예”라고 응답하며 이행한다면, 153(1부터 17까지의 수를 더한 값, 17은 10+7로서 십계명과 7성사를 상징하며 이로부터 흘러나오는 은총은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전달됨)마리의 물고기를 잡아올리는 기적(하느님의 일)이 일어남을 가르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베드로를 중심으로 서로 일치하는  교회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삶 역시 지극히 평범한 우리네 일상 안에서 살아낼 수 있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는 노력! 그리고 그 음성에 내 뜻과 반한다 할지라도 “예”하는 순명! “와서 아침을 먹어라”는 그분의 초대에 함께하고자 하는 열의! 그리고 당신이 떼어주시는 빵을 먹고 얻게 될 힘! 바로 이 모습들을 통해 부활은 완성되며 하느님의 큰일이 시작될 것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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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이진욱미카엘

등록일2020-04-17

조회수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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