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

자유게시판

사랑 가득한 예수님의 마음

 
사랑 가득한 예수님의 마음
    파리 시내 북쪽, ‘몽마르트 언덕’의 제일 높은 곳에는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을 조화시킨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871년부터 성당신축 모금 운동을 시작하여 1914년에 공사를 완료하였으며, 1919년에 축성식을 가진 성당입니다. 지금 이 성당은 ‘예수 성심 성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성삼위와 관련된 주제나 聖人들의 이름으로 성당 이름을 정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서양 여러 나라에서는 ‘예수 성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당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 성심 신심’과도 관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기념한 다음에 오는 금요일을 예수 성심 대축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6월을 ‘예수 성심 성월’로 지정하여 한 달 동안 예수 성심을 묵상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예수 성심은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을 상징화한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중세에서부터 이러한 구세주 그리스도의 사랑을 공경하는 예수 성심 신심을 실천하였습니다. 또한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역대 교황님들도 예수 성심 신심을 승인하고 널리 권장하는 문헌들을 발표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교인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면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는 행위로 이 신심을 실천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오늘 제1독서와 복음말씀은 비슷하면서도 차이를 보이는 기적 이야기를 통하여 어려움에 처한 우리를 염려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기적을 베풀어 잠시 동안 살 길을 열어주었지만, 결국 신세를 졌던 시돈 지방 사렙타 마을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는 탄식 속에서 엘리야에게 울부짖었고, 엘리야는 딱한 事情을 헤아려 하느님께 여러 차례 기도를 드린 다음에서야 아이를 살려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상적인 장례를 치르고 있던 과부를 보시고 측은한 마음이 드시어, 그 과부가 어떤 청도 하지 않았으나 먼저 다가가시어 죽은 이에게 명령하심으로써 과부의 아들을 살려주십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원죄의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하느님과 의로운 관계에 다시 놓이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고통 속에서 허덕이며 청을 올릴 때뿐만 아니라, 미처 청을 올리지 못했을 때도 늘 우리를 돌보시며 사랑을 베푸십니다. 마치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의 고백처럼 어쩌면 우리가 미처 청하지 못하였으나, 주님께서는 그리스도 교인을 박해하는 바오로를 부르시어 그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늘 잊지 말고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 찬미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전영준 바오로 신부

0

추천하기

0

반대하기

첨부파일 다운로드

등록자별빛

등록일2013-06-09

조회수7,298

  • 페이스북 공유
  • 트위터 공유
  • 밴드 공유
  • Google+ 공유
  • 인쇄하기
 
스팸방지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