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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이브, 그리고 진화

 

진화론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가톨릭 기본 신앙에 반문을 던지며 생각을 복잡하게 만든다. 우주, 생명, 그리고 인간의 기원에 관한 질문에 대한 답으로 진화론이 대두되었다. 진화론은 우주, 생명, 인간의 진화와 관련하여 우주진화론, 생명진화론, 인류진화론으로 세분될 수 있다. 그러나 우주진화론의 신봉자가 반드시 인류진화론의 신봉자일 필요가 없듯이 생명진화론의 신봉자가 인류진화론의 신봉자일 필요도 없다.

 

우주, 생명, 그리고 인간의 기원에 대해 사람들이 취하는 입장은 다음 세 가지 중의 하나이다:

(1) 즉시 창조 (special or instantaneous creation)

(2) 발전적 창조 또는 유신론적 진화 (developmental creation or theistic evolution)

(3) 무신론적 진화 (atheistic evolution).

첫 번째는 사물이 제 스스로 발전할 수 없고 다만 특정 순간에 하느님에 의해 직접 창조되었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사물이 이전의 상태 또는 형태에서 발전하여 앞으로 나아가지만 이 모든 과정이 하느님의 섭리와 인도로 이루어진다는 입장이다. 세 번째는 잘 알지 못하는 어떤 힘들(random forces)에 의해서 사물이 스스로 발전한다는 입장이다.

 

우주, 생명,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는 이들이 언제 생겨났는가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즉시 창조로 우주, 생명, 그리고 인간이 시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이 6,000년 혹은 10,000년 전 경에 동시에 생겨났다는 입장이다. 무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이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시간을 생각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우주의 나이는 대개 100억년에서 200억년,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의 나이는 40억년,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亞種)인 현대인의 나이는 30,000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발전적 창조론의 신봉자들은 이들 중의 어느 한쪽 또는 양쪽 모두를 수용하고 있다.

 

가톨릭의 입장

 

진화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은 어떠한가? 이것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질문일 수도 있으나 가톨릭 신앙으로 분명히 증언할 수 있는 몇 가지 진리가 있다.

 

우주 진화와 관련하여, 교회는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즉각적으로 우주가 창조되었다는 것을 틀림없이 말한다. “영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을 하느님께서 무에서 청조하셨다는 믿음을 가톨릭 신자들은 고백해야 한다고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엄숙히 선언하고 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 대한 교회법, 교회법 5).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별, 성운, 그리고 행성들이 어떤 순간에 갑자기 창조되었는지 아니면 오랜 시간을 두고 발전되면서 형성되었는지에 (이를 테면 오늘날 천문학자들이 토론하고 있는 빅뱅의 여파로) 대한 교회의 공식적인 견해는 없다. 그렇지만 교회는 별과 행성들이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되었다 하더라도 성경 말씀대로 그것 또한 하느님과 당신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믿는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늘이, 그분의 입김으로 그 모든 군대가 (, 성운, 행성) 만들어졌네” (시편 33:6).

 

생명진화론과 관련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생명체들이 발전의 과정을 밟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 입장은 없다. 그렇지만 교회는 만일 생명체가 발전의 과정을 거쳤다면 이것 역시 하느님의 추동력과 인도 아래 이루어진 것이므로 생명의 주인은 여전히 그분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인류진화와 관련하여 교회의 가르침은 더욱 확고하다.

교회는 하느님의 인도 아래 인간의 육체가 이전의 생물학적 형태에서 발전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영혼은 즉각적으로 창조되었음을 가르친다. 비오 12세 교황은 인문 과학, 신학으로 알게 된 지식에 따라 교회는 인간 육체가 전에 존재했던 생물(living matter)로부터 왔다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기원을 찾으려는 연구나 토론을 금하지 않는다 – [그렇지만] 가톨릭 신앙은 하느님께서 인간 영혼을 즉각적으로 창도했음을 믿는다라고 선언하였다 (Humani Generis 36). 따라서 인간의 육체가 즉각적으로 창조되었든, 또는 발전의 과정을 밟아왔든, 가톨릭 신앙인이 믿어야 할 교리는 바로 이것이다: 인간의 영혼은 즉시에 창조되었고 진화하지 않는다. 또 육체와 같이 부모로부터 받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특정 문제들에 대하여 즉시 창조론 또는 발전적 창조론을 허용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무신론적 진화론을 믿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에 대한 질문

 

우주, 생명, 그리고 인간이 나타난 시간에 대하여 정의는 더욱 알 수 없다. 교회는 우주의 나이가 유한하다는 것 우주가 영원으로부터 존재한 것이 아님 - 을 틀림 없이 결정했으나 세상이 수 천년 전 혹은 수십 억년 전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틀림 없이 정의하지는 않았다.

 

가톨릭은 성경과 과학적 증거에 따라 우주 나이와 관련된 증거들을 따져야 한다. “신앙이 이성보다 우위에 있기는 하지만, 신앙과 이성 사이에 진정한 불일치는 있을 수 없다. 신비를 계시하고 신앙을 주시는 바로 그 하느님께서 인간의 정신에 이성의 빛을 비춰 주시기 때문이며,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부정하시거나 진리가 진리를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CCC 159).

 

이런 문제들에 대한 물리학이 달성한 업적에 대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세계와 인간의 기원 문제는 많은 과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러한 연구는 우주의 생성 시기와 크기, 생명체의 등장, 인간의 출현 등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발견으로 우리는 창조주의 위대함을 더욱 더 찬미하게 되고, 그분의 모든 업적과 학자들과 연구자들에게 주신 지능과 지혜에 더욱 감사하게 된다” (CCC 283).

 

과학적 증거를 살펴 보는 것은 이 글의 범위 밖이지만, 창세기에 기술되어 있는 6일 동안의 창조에 대해 몇 마디 하고자 한다. 6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이들은 연대순 해석과 사건별 해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연대순 해석

 

연대순 해석에 따라 6일 동안의 창조를 해석하면 각 사건들이 정확히 순서에 따라 일어났으므로 먼저 번의 사건이 분명 뒤의 사건보다 앞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6일의 기간이 24시간으로 정의되는 하루가 여섯 번 흘렀음을 의미하는가?

 

창세기에서 하루(day) 해당되는 히브리 단어는 yom인데 때로 말은 24시간보다 시간을 의미했으므로 창세기의 하루가 오늘날의 하루와 같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창세기 2:4). 그렇지만 창세기 1장에서 창조 때의 하루가 오늘날의 하루와 같은 뜻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게 보인다. 각 날이 끝날 무렵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하루가 지났다라는 말이 공식처럼 따른다 (창세기 1:5). 저녁과 아침은 낮이 밤으로, 밤이 낮으로 변화되는 순간이고 24시간보다 긴 시간이 한 번의 낮과 한 번의 밤으로 구성될 수 없으므로 창세기에서 사용된 히브리 단어가 가리키는 하루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24시간 하루와 같다.

 

창세기의 하루를 24시간으로 구성된 하루로 보지 않는다면 창세기가 연대순 기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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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고대 근동 저자들의 말과 기록들은 우리 시대의 말과 기록처럼 그 문자적 의미가 항상 명백하지는 않다. 문법이나, 언어학, 문맥 만으로 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을 밝히려 해서는 안 된다. 해석자는 저 옛날 근동 지방에서 생활했던 사람들 틈으로 돌아가 역사, 고고학, 인종학, 그리고 다양한 과학에서 도움을 얻어 성경 저자가 기록하려고 했던 것을 정확히 찾아야 한다. 고대 근동 사람들이 생각을 표현할 때 사용한 말과 형식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같지 않았다. 해석자는 섣부르지 않고 고대 근동 문헌들을 면밀히 조사한 후에 결정하여야 한다” (Divino Afflante Spiritu 35-36).

 

사건별 해석

 

창세기 1장은 연대순이 아닌 사건별 기록일 가능성이 있다. 이 견해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고대 문헌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록 방식을 근거로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고대 문헌들은 연대순 기록이 아닌 사건별 기록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세상 창조가 시작될 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다” (창세기 1:2). 처음 3일 동안 하느님은 다양한 환경 설정을 통해 우주가 꼴을 갖추도록 하여 한 가지 문제점을 해결하신다.

 

첫 째 날 낮과 밤을 가르시고, 둘 째 날 아랫물(바다)과 윗물(구름)을 가르시고 그 사이에 창공을 두신다. 그리고 세 째 날 아랫물을 다시 가르시어 마른 땅을 창조하신다. 이제 세상은 꼴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빈 상태였다. 다음 삼 일 동안 하느님께서는 지난 삼 일 동안 창조하신 세 영역을 두루 채우시고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위하여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신 다음 업적이 완성되자 일곱 번째 날에는 쉬셨다.

 

실제 역사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실제 역사라는 것이다. 창세기는 연대순 형식이 아닌 간단한 사건별 기록이고 고대 창세기 독자들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창세기 1장은 하느님의 실제 업적을 사건별로 기록한 역사서로 생각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성경은 이러한 창조주의 활동을 상징적으로 6일 동안 계속된 하느님의 (work),’로 표현하며, 이 일은 일곱 째 날의 휴식으로 끝을 맺는다” (CCC 337), 그러나 창조주 하느님에게서 존재를 받지 않은 것은 없다. 세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에서 생겨남으로써 존재하기 시작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 자연계 전체, 인간의 모든 역사는 이 원초적 사건에 근거한다. 이 기원에서 세계가 형성되고 시간이 시작되었다” (CCC 338).

 

창세기 1장에 기록된 사건을 하나의 전설로 여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대인에게 익숙하지 않는 방법으로 기록된 역사라 하더라도 창세기 1장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기록이다.

 

아담과 이브: 실존 인물

 

아담과 이브 그리고 그들의 타락 이야기를 꾸며낸 이야기로 여기는 것도 허용될 수 없다 (창세기 2-3). 여기에서 인류가 한 쌍의 인간에서 유래되었는가 (인류일조설: 人類一祖設: monogenism) 또는 최초 여러 쌍의 인간에서 유래되었는가 (인류다조설: 人類多祖設: polygenism)의 질문이 떠오른다.

 

이와 관련하며 비오 13세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톨릭 신자는 확인 절차 없이 추측으로 고안된 인류다조설을 즐길 자유를 누릴 수 없다. 인류다조설은 애초 부모들이 여럿 있었는데 아담은 단지 그들 중의 일부를 대표할 뿐이라거나 아담 이후에 그로부터 유래되지 않은 또 다른 인류가 존재했음을 주장한다. 이 견해는 성경에 계시된 진리는 물론 교회의 가르침과도 결코 양립될 수 없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원죄는 아담이라는 개인이 실제로 범한 죄로 모든 인류가 세대를 통해 자신의 것으로 물려받는 죄이다. 원죄는 범한 죄가 아니라 짊어진 죄이며 행위가 아니라 상태이다. 따라서 가톨릭은 인류다조설을 수용할 수가 없다” (Humani Generis 37).

 

비록 현대적 감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으나 창조와 타락 이야기는 실제 존재했던 사건의 기록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창세기 3장의 인류 타락 이야기는 상징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인간 역사의 시초에 일어났던 사실, 곧 원초적인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의 계시가 우리에게 주는 확신은 인간의 첫 조상들이 자유로이 범한 원죄가 온 인류 역사에 영향을 미쳤다는 신앙이다” (CCC 390).

 

과학과 종교

 

가톨릭 교회는 언제나 다음과 같이 가르쳐 왔다: “신학과 과학 사이에 진정한 불일치란 있을 수 없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견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성경 저자들, 아니 더욱 엄밀하게 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영이 구원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진리 (눈에 보이는 사물의 내부 구조)를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문제를 다룰 때 과학적 설명 대신 비유적인 언어나 시대에 맞는 대중적인 말을 사용한 것도 이 때문이다” (Providentis-simus Deus 18).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지식 분야에서 연구가 진실로 과학적인 방법과 도덕 규범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결코 신앙과 충돌을 일으킬 수 없다. 세속 사물과 신앙의 실재는 모두 똑같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겸허하고 항구한 마음으로 사물의 비밀을 탐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만물을 보존하시고, 있는 그대로 존재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손에 인도되고 있는 것이다” (CCC 159). 가톨릭 교회는 과학과 과학 발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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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Y안드레아

등록일2013-06-19

조회수7,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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