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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두 번 먹고 한 번 혼인하는 미사 (2)

미사를 혼인잔치라고 말할 수 있는가?

  성체를 모시기 직전에 사제가 짧게 말하는 기도를 생각하면 미사를 혼인 잔치라고 말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 받은 이는 복되도다.”이것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서 절정의 순간 천사가 한 말이며 전체 성서도 이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묵시록 19:9). 이것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잠시 뒤로 물러서서 묵시록 전반에 걸쳐 이 말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할렐루야

묵시록 191절부터 6절까지의 내용은 하늘에 있는 많은 무리들이 천사와 원로들과 함께 주님께 새로운 노래를 불러 드리는 것이다.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그들은 네 번 할렐루야를 외친다. “야훼를 찬양하라 (Praise Yahweh)” 란 뜻을 갖는 전례 용어, 할렐루야는 구약에서는 자주 쓰였지만 신약에서는 전체를 통틀어 모두 네 번만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이 네 번도 묵시록 19장의 연속된 6개의 절 안에서 아주 급하게 한꺼번에 사용되었다.묵시록(19:1-16)에 기록된 이 갑작스런 할렐루야 후렴은 구약의 그 유명한 할렐 시편 (Hallel Psalm)”을 생각나게 한다 (시편 113, 115, 117 ). 이들 시편을 할렐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들 시편의 몇몇 구절들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칭송하면서 할렐루야로 시작되거나 끝나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유다인들이 파스카 음식을 먹으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이들 할렐 시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탈출기에서 이집트인들로부터 이스라엘을 구해내셨고 다시 한 번 당신 백성들을 구해 내실 야훼를 찬양하며 할렐루야를 불렀다. 사실상 이들 노래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에서 성찬례를 제정하신 후 파스카 음식을 드시면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일 것으로 생각된다 (마태오 26:30, 마르코 14:26).

어린양의 혼인 잔치

어린양의 혼인 잔치는 묵시록 19장에서 사용된 네 번의 할렐루야 중 6절에 기록된 마지막 할렐루야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묵시록 196절은 천상 전례의 전환점으로 어린양의 잔치에서 많은 무리가 내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할렐루야! 주 우리 하느님, 전능하신 분께서 다스리기 시작하셨다.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자.어린양의 혼인날이 되어 그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다” (묵시록 19:6-7).또 천사가 요한에게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행복하다라는 하느님의 참된 말씀을 쓰라고 지시한다 (묵시록 19:9). 그렇다면 이 어린양의 잔치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주님의 잔치 (Lord’s Supper), 즉 성찬례를 말한다. 가장 먼저 잔치와 양이란 말이 떠올리는 것은 파스카 잔치(Passover supper). 유다인들은 희생 제물로 양을 잡은 다음 그 고기를 먹었는데 이것은 파스카 잔치에서 식탁에 앉은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가장 중요한 요리였다. 더욱이, 할렐 시편과 같이 할렐루야 후렴구가 붙어 있는 묵시록 191절부터 6절까지의 내용을 읽어보면 이 파스카가 암시하는 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그러므로 이 신나는 어린양의 잔치는 파스카 잔치의 한 형태임에 분명하고 묵시록에 기록된 (천상)전례의 틀에 비추어 볼 때, 새로운 파스카, 즉 성찬례로 이해될 수 있다.그러나 이 구절은 보다 극적인 다른 무엇을 말해준다. 묵시록 19:6-9은 어린양을 신랑(bridegroom)으로 계시하고 있지 않는가! 이 시점에 이르러 파스카 잔치가 바로 혼인 잔치임을 알 수 있다. 신랑인 어린양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이 잔치에서 맞이할 신부는 교회, 즉 우리들이다. 이것은 어린양이 신부와 결합하는 혼인 잔치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최종적이고 완전한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묵시록 21-22, 에페소 5:21-33). 우리는 이곳 지상의 성찬례를 통해서 예수님과 교회의 천상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의 성찬례는 하느님을 신랑으로 맞이하여 그분과 함께하는 영원한 친교의 삶을 지상에서 미리 맛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제가 이 성찬에 초대 받은 이는 복되도다라고 말할 때, 그는 세상 종말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우리를 초대하는 천사의 말을 전하는 것이다 (묵시록 19:9).미사에서 사제의 이 말을 들을 때, 우리는 혼인 잔치 초대장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결혼식의 평범한 하객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신부이다! 교회의 구성원으로 성체를 받기 위해 중앙 복도를 걸어 나갈 때, 우리는 신랑이신 예수님과 결합되기 위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참으로 영성체는 혼인과 같은 것이다. 혼인한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자신을 증여하면서 가장 친밀한 방법으로 그들의 몸을 결합한다. 마찬가지로 신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이곳 지상에서 성찬을 통해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시면서 우리와 당신 자신을 가장 친밀한 방법으로 결합시키기 위해 오신다. 영성체 후에 감사를 드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주님 안에 머무르면서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께 감사 드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성체 후 이 순간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 안에 살고 계신다는 것이다. 어떤 남편도 아내와 친밀한 관계를 가진 직후에 전자우편을 보기 위해 또는 잔디를 깎기 위해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의 신랑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데 주차장으로 달음질 치거나, 친구와 이야기 하고 커피를 마시며 도넛을 먹기 위해 서둘러서야 되겠는가? 이 시간은 사랑하는 주님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 오직 그분께 집중하고 감사 드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분께 나의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잠시 동안의 여유를 가질 때다. 이런 관점에 미사는 진실로 혼인 잔치다. 신랑과 한 몸이 되기를 갈망하는 신부와 같이, 우리 마음은 성체를 통한 성사적 방법으로 가장 친밀하게 우리에게 들어오시는 신랑이신 하느님과의 거룩한 친교를 향한 열망으로 채워져야 한다.

성모님의 첫 영성체

영성체의 신성한 순간들에 대한 마지막 묵상을 위하여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눈을 돌려보자. 언젠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찬에 처음 참여하여 영성체를 한 성모님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한 적이 있었다.첫 번째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태내에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와 성체를 받은 사람 사이에 심오한 연관성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어떤 의미에서 성체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마리아와 같아진다. “동정녀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도록 당신의 태를 봉헌하였으므로 심지어 성찬례가 제정되기 전부터 성찬의 신앙으로 살았다.” 아홉 달 동안 마리아는 당신 몸 안에 예수님의 몸과 피를 양육하고 있었다. 미사에서 우리는 성사를 통해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다. “가브리엘 천사의 계시를 통해 마리아는 성자의 실제 물리적 살과 피를 받으셨고 신자들은 성사를 통해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주님의 몸과 피를 받는다. 그러므로 마리아께 일어났던 일이 어느 정도 신자들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찬례 제정에 대한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성모님의 느낌에 대해 묵상해 보았다. 성모님께서는 마지막 만찬에 참석하지 않으셨으므로 아마 제자들의 입을 통해 그곳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들으셨을 것이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그리고 다른 제자들을 통해서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 들었을 때 성모님은 분명 이렇게 느꼈을 것이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루카 22:19)?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내어 주셨고 성사적 표시를 통해 나누어 주는 주님의 몸이 성모님, 당신 태가 받았던 그 몸과 똑같은 것이 아닌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복되신 마리아께서 느꼈을 영성체의 독특한 의미를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성모님에게 있어 영성체가 의미하는 것은 이전에 당신의 심장과 조화롭게 박동 쳤던 예수님의 그 심장이 다시 당신 태내로 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이다 ”  얼마나 심오한 통찰력인가! 매 영성체 때마다 예수님과의 재결합을 위해 준비하는 성모님을 생각해 보라. 다시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아들을 가지게 된 성모님은 큰 기쁨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성체를 받는 성모님의 마음 가짐은 우리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성모님께서 당신 아들 예수님을 받으신 것처럼 영성체 때마다 신자들은 자신의 심장이 그리스도의 심장과 조화를 이루며 힘차게 뛰기를 희망해야 한다.

주일 미사에서 두 차례의 연속된 식탁예절을 통해 신자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그리스도의 희생과 합하여 하느님께 봉헌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었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고, 그리스도께서 사제로서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봉헌하는 그 현장에 서 있었다. 또 하객이 아닌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혼인잔치에 참여하였다.

 

풍성한 전례를 위해서 불과 1시간 안에 일어나는 이러한 사건들을 의식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영성체를 받은 직후에는 이미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으므로 십자성호를 긋지 않는다. 또한 한국 교회에서는 미사 후에 성당을 나설 때 성수를 찍어 십자성호를 긋는 대신 깊은 절을 한다. 또한 미사 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동기도도 바치지 않는 것이 좋다. 가급적 미사 중에 일어났던 무한한 은총과 엄청난 사건들을 조용히 묵상할 필요가 있으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파견성가 후에는 기도나 어떤 멘트도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가급적 공동기도는 미사 전에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사 파견은 사제가 하는 것이다. 파견성가 후의 기도나 멘트가 마치 파견처럼 이해될 소지가 있으므로 미사후에는 침묵이 권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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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Y안드레아

등록일2013-06-30

조회수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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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pro

| 2013-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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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형제님은 신학자? 성서학자?
공학전공으로 알고 있는데
언제 이렇게 깊고 많은 공부를 했나요?
계속 좋은글 부탁합니다.

Y안드레아

| 201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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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학자 성서학자와는 거리가 먼 것 같고요, 몇 년 전부터 재미삼아 영성 관련 서적 조금씩 번역해 보았는데 이제 자료가 제법 모였네요. 성경 가톨릭교회교리서(CCC)에 있는 내용은 있는 그대로 참조했고 그 밖의 다른 내용도 진짜 신학자, 성경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므로 안심하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단적 내용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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