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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와 청원기도

    세상살이와 청원기도
     
    저의 기도는 여전히 청원기도가 많습니다. 
    신앙이 성숙해질수록 바라고 매달리기보다 감사기도가 많아진다고 하던데, 
    저의 신앙이 아직 거기까지는 아닌가 봅니다.
    청원의 내용은 가족의 건강과 평화와 안녕, 관심 있는 분들의 영육간의 건강, 
    그리고 상당 부분은 나 자신의 세상살이에 관한 것입니다. 
    공직에 있을 때는 일의 성취나 승진, 보직 등을 앞두고 청원을 하였고, 
    변호사 일을 시작해서는 사무실의 번창과 맡은 일의 성취를 위하여 청원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검사 시절 직접 중요사범을 단속할 때면 수사관들을 
    지휘하여 현장으로 내보낸 후, 늦은 밤 검사실에 혼자 둥그러니 앉아 
    결과를 기다리며 “하느님, 이 범죄꾼들이 현세에서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면 
    수사관들의 손에 넘겨주시고,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제법 모양새 있는 청원기도를 드렸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결국 미래를 향하여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라는 시간에 속박되어 있는 인간은 미래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까지 
    한치도 더 빨리 미래를 내다볼 수 없고, 미래의 털끝 하나도 미리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는 온전히 하느님의 영역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미래의 일에 관심을 표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하느님께 문의하고 청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변화무쌍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살이를 하는 사람들에게 
    청원기도거리가 많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느님께 드리는 청원은 피상적으로 보면 이루어진 것도 있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청원도 
    그것이 제 눈에 그렇게 보일 뿐,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이미 이루어주셨다는 
    확신 같은 것이 저에게 있습니다. 만약 배고픈 아이가 사탕을 달라고 칭얼거리는데 
    아이의 엄마가 밥을 주었다고 가정합시다. 아이의 눈에는 청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지만,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청원을 120% 
    들어준 것과 같은 이치라 생각합니다. 청원하는 저의 눈높이와 청원을 들어주시는
    하느님의 눈높이가 다를 수밖에 없고, 눈높이에 따라 하나의 현상이 서로 다르게 
    보일 수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 것, 이것은 제 신앙이 세월을 겪으며 터득한 소박한 
    지혜입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나보다 하느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것이고,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 때문에 오늘도 저는 많은 자질구레한 것들에 관하여 하느님께 청원을 드리며 
    하느님을 귀찮게 하고 있습니다.
     
    “빵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마태 7,9 참조) 라는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을 반석처럼 믿으면서 말입니다.
     
    서울대교구
    조동석 베네딕도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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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별빛

등록일2013-09-05

조회수7,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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