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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영적교류) 연중17주간 금요일 말씀묵상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뒷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죠.

 

미국의 UCLA라고 하는 대학의 의과대학 교수가 의학과정 공부를 마치고 현지 병원에 나가서 환자들을 진찰하고 치료하게 될 학생들을 놓고 가르치는 중에 한 사례를 들어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매독균에 걸려 있고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입니다. 여기서 아이 넷이 태어났는데, 첫째 아이는 매독균으로 인해서 장님이 되었고, 둘째 아이는 이미 병들어 죽었고, 셋째 아이 역시 이 부모들의 병 때문에 귀머거리가 되었고, 넷째 아이는 결핵 환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때에 어머니가 또 임신을 했어요. 이런 경우에 그대들이라면 그 어머니에게 어떻게 조언을 주겠습니까?"

 

학생들은 입을 모아 대답합니다. “유산시켜야 합니다. 아버지가 매독 환자요 어머니가 폐결핵 환자이며, 이미 낳은 아이 넷도 다 그 모양이 되었는데, 이러한 악조건에서 아이를 또 낳아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와 부모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유산시켜야 됩니다.” 그러자 교수는 점잖게 아주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대들은 지금 베토벤을 죽였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천재 음악가 베토벤의 아버지는 매독 환자요, 어머니는 폐결핵 환자요, 형제들도 다 병들어 약한 모습이었지만, 그 가운데서 태어나 57여 년 동안 작곡 활동을 했으며 그도 나중엔 청각장애 가운데서도 그는 많은 불후의 명곡을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 의과대학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대들은 환자들을 대할 때에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의학적 지식이 좀 있다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치료하고 수술하고 없애고 해야 한다고 단정지으며 속단하지 말것을 말입니다. 모름지기 신의 역사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후에 겸손하고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에 대해서 진정 다 알고 있었던 것일까요?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알고 있던 예수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예수에 대한 일부였을 뿐, 전부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부의 정보를 그들은 그것이 예수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한마디로 자신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 않은 채 그것이 전부인양 착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들의 불완전한 판단과 속단에서 비롯한 무서운 결과에 주목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그들의 불신과 속단의 결과로 예수님이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적을 보고도 그 일이 하느님의 일임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더 이상의 기적은 무의미했던 것이죠. 그렇게 보면 기적도 간절히 바라는 이들에게, 그것도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꼭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매달리는 이들에게만 유보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기적이 그들의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다면 주님께서는 그 일을 반드시 이루어주신다는 것이죠. 하지만 반대로 기적이 오히려 그들의 불신을 키우고 맹목을 갖게 만든다면 절대 일으키지 않으시는 하느님이심도 알 수 있습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일으키시지 않으셨음에 대한 근거를 명확히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58). 그렇다면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이 믿지 않았던,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봐야겠죠. 이유 1, 사람이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54). 이유 2, 저 사람의 어릴적과 커가는 모습을 내가 다 보아 알고 있고, 그 부모와 형제와 직업도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55-56). 이유 3, 이유1,2로 인해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생각(57절). 이 모든 이유의 공통점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함을 인지하는 겸손이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고정관념과 속단이라는 교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 합니다. 우선 나 자신부터 시작합시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 앉아 얼마나 많은 이들을(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 하시는 일들 조차) 자로 재고, 판단하고, 험담하고, 모함하며 분열을 조장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도 기적을 보고도 사탄의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그 일을 행한다며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안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첫 번째 활동은 일치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우리가 모두가 서로 다른 지체임을 인지하게 하시는 것, 하지만 한 몸임을 알게 하시는 것, 그렇게 한 몸으로서 머리의 이끔에 의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것, 그래서 각자의 탈랜트를 통해 한 몸이 살 하나의 하느님 나라를 만들어 가시는 것 그것입니다. 그 반대는 악에서 기인하는 것임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