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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오래전 선배 신부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본당에서 아주 열심히 봉사활동하시는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침 일찍부터 매일같이 새벽미사에 오셔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성당의 여러 봉사활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성당의 모든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살아 있는 성녀’라고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갑자기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당 신부님은 할머니의 장례미사를 치르고 난 후 며느리에게 말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성당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할 만큼 열성적인 신앙인이었으니 며느님도 그분의 뜻을 받들어 예비자 교리에 나오세요.”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며느리는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흔들며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신부님,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싫습니다. 성당에 다니지 않겠습니다. 제가 성당에 나가게 되면 죽어서 천국에서 시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될 텐데, 생각만 해도 정말 싫습니다.” 집 밖에서는 모든 이의 귀감이 되었던 그 할머니가 정작 함께 살고 있던 며느리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랑과 봉사의 행위는 사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유언과 같은 말씀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처럼 아름답고 위대한 말씀은 없지만, 이것만큼 실천이 어려운 말씀도 없습니다. 미움과 증오에 빠지기 쉬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사랑에는 의지가 필요하고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웃 사랑은 말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질 때에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사랑에 대해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요한 3,18) 말처럼 쉬운 것은 없습니다. 말만 하고 실천이 없는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며 거짓 사랑입니다. 또한 사랑의 마음과 정신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어떤 사랑의 행위라도 올바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일시적인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강요되는 계명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의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당신들, 그리스도인이 우리와 다른 점이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의 삶,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으로 보여 줄 수밖에 없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리스도처럼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간디가 남긴 유명한 말을 한번 쯤 생각해 보아야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는 싫다.” 서울대교구 허영엽 마티아 신부
(이 글은 꾸르실료 카페에서 옮겨온 것입니다. http://cafe.daum.net/cursi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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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별빛

등록일2013-04-28

조회수8,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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